너무 많은 자유가 불행을 만들 때 - 선택의 역설
들어가며 — 이유식 레시피 고르다 지친 날
첫째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할 때 쯤이였다. 육아에 서툰 초보엄마는 수많은 정보를 뒤지기 시작했다.
유튜브에 이유식 레시피 영상을 찾아보니 정말 수천가지 영상이 나왔다.
블로그에도, 인스타그램에도, 맘카페에도. 모두 "이게 제일 좋다"고 했다.
그리고 이시기에는 꼭 이걸 먹여야 한다고 했다.
나는 두 시간 동안 레시피를 비교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다.
다음 날은 분유 브랜드를 고르다가 한 시간을 썼다.
기저귀 브랜드, 보습크림 브랜드, 아기 세제. 하나하나가 전부 선택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정말로 육아의 선택에 기로에 완전히 지쳐있었다.
이게 자유인가, 아니면 고통인가.




배리 슈워츠의 선택의 역설
2004년,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는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을 출간했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더 불행해진다.
이유는 세 가지다.
선택 마비 —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결정 자체가 어려워진다.
기회비용의 증가 — 선택지가 많을수록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커진다.
기대 수준의 상승 — 선택지가 많으면 완벽한 선택이 존재할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다.
그 기대를 실제 선택이 충족시키지 못하면 실망이 따라온다.
잼 실험
심리학자 쉬나 아이엔가(Sheena Iyengar)와 마크 레퍼(Mark Lepper)의 잼 실험.
24가지 잼을 제공했을 때보다 6가지를 제공했을 때 구매율이 10배 높았다.
선택지가 적었을 때 더 잘 결정했다.
이유식 레시피를 두 시간 동안 고르다 지친 나에게, 누군가 "이것만 해봐요"라고 딱 하나를 알려줬을 때 얼마나 편했는지 모른다.
최대주의자와 만족주의자
슈워츠는 두 유형을 구분했다.
최대주의자(Maximizer) —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하려는 사람.
모든 옵션을 검토하고, 비교하고, 최적의 결과를 추구한다. 선택 후에도 다른 옵션이 더 나았을지 계속 고민한다.
만족주의자(Satisficer) — 충분히 좋은 선택을 하는 사람.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을 충족하는 첫 번째 옵션을 선택한다.
연구 결과는 명확했다. 만족주의자들이 최대주의자들보다 더 행복했다.
나는 이유식 때 최대주의자였다. 지금은 만족주의자가 됐다. "이 정도면 됐어"를 배웠다. 그리고 실제로 더 행복해졌다.


자유의 무게 — 철학적 차원
장 폴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
신도 없고 본질도 없는 세계에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정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자유의 무게는 불안을 만든다.
오늘날 육아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유 방식, 교육 철학, 놀이 방법, 어린이집 선택.
이 모든 것이 선택이 됐다. 전통과 공동체가 그 선택을 대신해주던 시대는 지났다.
그 자유가 전례 없는 수준의 육아 불안을 만들어내고 있다.
역설의 해결책 — 제약이 자유를 만든다
작가 G.K. 체스터턴은 말했다. "예술은 제약 속에서 번성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의도적으로 선택지를 줄이는 것, 루틴을 만드는 것, 충분히 좋은 것으로 만족하는 연습.
나는 이유식 레시피 앱을 삭제했다. 다섯 가지 기본 재료만 정했다.
그러자 이유식이 즐거워졌다. 완벽한 이유식은 없었지만, 충분히 좋은 이유식은 매일 만들어졌다.

인문학적 시선 —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1941년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인간이 자유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자유를 두려워한다고 분석했다.
자유는 홀로 서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것이다.
그 무게가 너무 무거울 때 인간은 자유를 포기하고 싶어진다.
어떤 이유식이 제일 좋은지 알려달라는 맘카페 질문들.
어떤 선택이 옳은지 누군가 대신 결정해주길 바라는 마음. 그것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다. 그 불안한 자유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육아의 가장 깊은 부분이다.




마치며
완벽한 선택을 추구하는 것보다, 충분히 좋은 선택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그리고 육아에서 가장 필요한 지혜일 수 있다.
덜 선택하는 것이 더 잘 사는 것이다. 오늘도 수백 가지 선택지 앞에 선 당신에게.
지금 가장 내려놓고 싶은 선택의 무게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