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날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한 첫 주였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사무실에 앉았다. 동료들이 반갑다고 인사를 건넸다.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기쁜 것 같은데 기쁘지 않았다. 걱정되는 것 같은데 걱정이 실감 나지 않았다. 무언가 두꺼운 유리 뒤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
퇴근하고 아이를 데려왔다. 아이가 달려와 안겼다. 나는 꼭 안아줬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내가 지금 기쁜 건지, 안도하는 건지, 미안한 건지 잘 모르겠었다. 그냥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날 밤 문득 생각했다. 나, 괜찮은 걸까.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뫼르소는 누구인가
뫼르소는 알제리에 사는 평범한 사무직 직원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여자친구와 희극 영화를 보러 간다.
독자는 불편해진다. 이 사람은 왜 이러는 걸까.
그러나 심리학자의 눈으로 뫼르소를 보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뫼르소가 보여주는 감정적 무반응은 감정 둔화(Emotional Blunting) 또는 **해리(Dissociation)**의 패턴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감정 둔화는 감정 반응의 범위와 강도가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상태다. 슬픔도, 기쁨도, 분노도 모두 희미해진다. 세상이 회색 필터를 통해 보이는 것 같은 상태. 우울증, 만성 스트레스, 또는 외상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는 악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다. 그는 감정적으로 단절된 사람일 수 있다.
현대인의 감정 둔화
복직 첫 주의 그 느낌을 나는 나중에야 이해했다. 몸이 너무 오래 긴장 상태였던 것이다. 밤수유, 낯가림, 어린이집 적응, 복직 준비. 신경계가 쉬지 못하고 달려온 결과, 감정의 볼륨이 저절로 낮아져 있었다.
이것이 단지 나만의 경험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요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기쁜 일이 있어도 별로 기쁘지 않아요."
"울어야 할 것 같은데 눈물이 안 나요."
이런 말들이 낯설지 않다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신경계가 과부하 상태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감정의 볼륨을 낮추는 것이다.
특히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이 상태를 자주 경험한다. 감정을 느낄 여유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는 일상. 아이에게는 온전히 있어줘야 하고, 직장에서는 유능해야 하고, 집에 돌아오면 또 살림과 육아가 나를 기다린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의 감정'은 순서를 잃어버린다.
카뮈와 실존주의 — 부조리에 정직하게
카뮈의 핵심 개념은 **부조리(Absurd)**다. 인간은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세계는 그 어떤 의미도 제공하지 않는다. 이 충돌이 부조리다.
뫼르소는 이 부조리를 날것 그대로 사는 인물이다. 그는 사회가 요구하는 감정적 퍼포먼스를 거부한다. 장례식에서 울어야 한다는 것, 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 이 모든 사회적 각본을 그는 따르지 않는다.
육아를 하다 보면 비슷한 압박을 느낄 때가 있다.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행복해야 한다는 것. 지치면 안 된다는 것. 힘들어도 웃어야 한다는 것. 이 감정적 퍼포먼스의 압박이 오히려 진짜 감정을 더 깊이 묻어버리는 역설을 만든다.
감정은 왜 필요한가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뇌 손상으로 감정 처리 능력을 잃은 환자들을 연구했다. 놀라운 발견은, 이 환자들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감정이 없으면 더 이성적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감정은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알려주는 신호 체계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피곤하다는 감정이 없으면 쉬어야 한다는 신호를 받지 못한다. 불안하다는 감정이 없으면 아이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다. 감정은 귀찮은 것이 아니라 정보다.
감정이 둔화될 때 우리는 정보를 잃는다. 그리고 그 정보를 잃으면 아이에게도, 자신에게도 덜 반응적이 된다.
인문학적 시선 — 이방인이 된다는 것
카뮈가 뫼르소를 이방인이라고 부른 데는 이중의 의미가 있다. 사회로부터의 이방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이방인이기도 하다.
감정으로부터 단절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낯선 관찰자가 된다. 내가 왜 이것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알 수 없다.
복직 첫 주의 나도 그랬다. 아이가 안겨오는데 그 기쁨이 실감 나지 않을 때, 나는 잠시 나 자신의 이방인이었다.
어쩌면 카뮈의 메시지는 이것일 수 있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마비시키는 것이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 부조리에 직면하면서도 감각하고, 느끼고, 선택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반항이라고.
마치며
뫼르소는 우리 모두의 일부다. 너무 피곤해서 슬픔을 느낄 여유가 없는 날. 중요한 일 앞에서 아무 감정도 올라오지 않는 순간. 아이 얼굴을 보면서도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는 때. 그럴 때 카뮈의 소설은 말한다. 그 낯섦을 외면하지 말라고. 감정의 부재 그 자체에 귀를 기울이라고.
이방인이 된 느낌이 드는 순간이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가야 할 때다.
오늘 당신의 감정의 볼륨은 어떤가요? 너무 오래 낮춰두진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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